[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34최병효 책 독후기34. ‘사후 조작’은 계속 진행 중‘1983 버마 사건’을 포함해 전두환 정권 7년 동안 일어난 4건의 국가조작 테러는 어쩌면 더러운 세계 공작사에서는 길이 남을 금자탑일지도 모른다. 이들 사건은 미국이 유지하고 지탱하는 남북 분단체제를 굳건히 다졌고, 이를 통해 미국은 1975년 베트남전 패퇴의 굴욕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열 수 있었다. 그렇게 극악무도할 정도로 공격적인 미국의 대소대북 전략은 급기야 소련 해체로 이어졌다.
[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33최병효 책 독후기 33. -2 ‘저널 프락치’ 싱 후쿠오‘1983 버마 사건’의 시말과 당시의 정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최 전 대사가 이 사건에 대해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된 데는 잘못된 전거(典據) 탓도 있다. 전거란 말이나 글의 문헌적 근거를 뜻한다. 그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전거 중에는 미국 CIA 또는 다른 정보기관의 끄나풀임이 분명한 외국 기자도 있고, 안기부의 대북 심리전 자료도 있다. 조작 개연성을 의심해야 할 전거를 100% 신뢰
[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32최병효 책 독후기 32. -1 버마행 특활비 20만불 누가 먹었을까?지난 31편 글(‘아웅산 테러리스트 = 강민철’의 생사)로서 ‘1983 버마 사건’의 실체 논증은 일단락됐다고 본다. 본고는 최 전 대사가 책에서 밝힌 전두환의 버마 행각 관련 외무장관 특활비 20만 달러의 행방을 살펴본다. 이 돈이 ‘증발’했다는 사실을 밝힌 이는 그가 처음이고 유일하다. 모두들 쉬쉬하며 감춰온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가 말하는 “
[연재]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31최병효 책 독후기 31. 강민철 송환 공작과 그의 급사의 내막‘1983 버마 사건’이 전두환네와 미국이 벌인 조작극이라면 강민철은 남측에서 보낸 공작원이어야 한다. 안기부 대공수사국 국장(성용욱)과 과장(한철흠)이 직접 그와 밀담을 나눴다는 사실로 미뤄보면 그는 안기부 대공수사국 또는 안기부 대공수사국과 함께 움직이는 정보사 소속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강민철이 안기부나 정보사가 보낸 공작원임을 짐작케 하는 문건이 있다. 바로 1998년 11월 작성
[연재]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30최병효 책 독후기 30. 전두환 “간첩을 잡아 버마 사건을 시인하게 하라”전두환네와 미국은 “서울에서 왔다”는 강민철에게 “너,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니냐”는 말로 달래 결국 “북한에서 왔다”고 말을 바꾸도록 만들었지만(앞글 29편),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플랜 B’가 있었다. 악에 받친 강민철이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조작질에 나섰다. 간첩을 생포해(?) “아웅 산 묘소 테러는 이북이 한 거 맞소”라는 자백을
( 조선일보 1983.10.18 / 발표만 남았다) 또 특사를 보내고 언론을 동원해 ‘북한 배후설’을 퍼뜨리며 이를 기정사실화하려 했다. [10월 10일 오후 유해 운구 특별기로 도착한 이원경 특사는[당시 체육부장관, 며칠 뒤 외무부장관 임명] 다음날인 11일 우 산 유 대통령과 우 칫 라잉 외무장관을 면담 ... 이번 사건이 북한 만행임을 기정사실화하고 배후 세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 강력한 응징 조치를 요구 ...]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86쪽) 뿐만이 아니었다. 앞글(27.28편)에서 살펴봤듯이 전두환네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8)최병효 책 독후기28. 동건애국호의 비밀 - ②보도 통제스리랑카 주재 한국대사가 ‘1983 버마 사건’ 발생 나흘 전인 1983년 10월 5일 전문(電文)을 통해 북측 화물선 동건애국호가 버마에 들렀다 스리랑카에 정박 중이라는 사실을 서울 외무부에 알렸고, 이에 화들짝 놀란 외무부의 요청으로 뒤늦게 이계철 버마주재대사가 이를 확인했지만, 그가 보낸 10월 7일 자 전문이 서울 외무부에 도착한 것은 전두환네가 버마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인 10월 8일 아침이었다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7)최병효 책 독후기 27. 동건애국호의 비밀 ①정보 은폐앞글(22편) 에서, 전두환네는 ‘버마 사건’을 조작하기 두 달 전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총련)와 북측 화물선 ‘만경봉호’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조만간 자신들이 벌일 끔찍한 사건을 예시했다고 설명했다.[안기부는 ... ▲북괴가 해외 무역상사와 외교 공관에 대남공작 전담 요원을 위장 배치해 [강조]해외 공관을 대남공작 전초기지로 ... 일본을 수시 왕래하는 만경봉호를 이동 공작 기지로 이용, 간첩 교육과 함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6최병효 책 독후기26. “한국 경호팀이 10월 6일 묘소 천장에 올라갔다”‘살생부’를 만들어 묘소 앞에 도열할 사람을 고르고, 이들 앞에 서야 할 전두환은 현장에 가지 않으면서 그가 현장에 도착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그 순간에 폭약을 터뜨려 도열한 이들을 폭살했다면, 그 폭약은 언제, 누가 설치했을까.전두환 정권과 미국이 이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만들었으니 그 폭약은 북한 공작원이 설치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이 사건이 전두환네와 미 CIA 등이 공모한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5)최병효 책 독후기25. 동선을 조작해 대통령 행차를 연출하다아웅 산 묘소 앞에 수행원들을 세워 놓고 미리 설치한 폭탄을 터뜨려 ‘북한에 의한 전두환 살해 미수 각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꼼수가 필요했다. 수행원들이 미리 도열한 상태에서 마지막에 전두환이 등장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이때 폭탄을 터뜨려야 했다.먼저 ‘전두환 없는 전두환의 등장’을 연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두환이 늦게 출발하고, 그와 일행이 도착할 시간에 다른 이를 보내 전두환이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24)최병효 책 독후기24.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이려 했을까 ②1983년 8월 5일 전두환의 서남아.대양주 순방 발표 때 거명된 공식 수행원은 20명이지만, 출국 전날인 10월 7일 최종 발표 명단에는 육사 8기 출신의 김종호(金宗鎬) 건설부 장관과 하동선(河東善)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차관급)이 추가돼 공식 수행원은 22명으로 늘어난다. 둘이 추가된 내력은 알려진 바 없다.‘공식 수행원’ 가운데 아웅 산 묘소 헌화식에 두 줄로 도열할 사람은 16명이었고, 이중 1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23)최병효 책 독후기23.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이려 했을까 ①흔히들 아웅 산 묘소 테러를 이야기할 때 ‘아까운 인재들이 죽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목숨을 ‘북괴가’ 앗아갔다는 ‘순국의 세뇌’는 이땅의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주술과도 같다.신문들이 써 댄 것처럼 장.차관(급)만 인재일리 없지만, 이들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가 있다. 횡재하듯 장차관 자리가 주어졌고, 한 순간 그 영전의 영광을 만끽했던 이들이 끔찍한 자작테러의 희생자가 됐기 때문이다. 또 장차관 자리를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22)최병효 책 독후기22. 83년 7월, 실수로 ‘버마 공작’을 노출했다!1983년 5월 말 전두환패와 레이건패는 ‘북한의 비정규전 도발’ 운운하는 친서를 주고받으며 전두환의 버마 국빈방문 계획을 확정함으로써 ‘버마 음모’의 얼개를 짰다. 이때부터 10월 9일 ‘버마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넉 달 기간은 저들이 음모의 세부 계획을 다듬고 외장을 치는 기간이었다.이 기간은 8월 5일 ‘전두환의 서남아.대양주 순방 계획’ 발표를 기점으로 앞뒤 두 달 씩 둘로 나뉜다. 5월말
강진욱 | 등록:2021-11-13 08:47:02 | 최종:2021-11-13 09:23:08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1)최병효 책 독후기21. 전두환의 버마 방문... 공작과 은폐의 내막대통령 전두환의 버마 방문이 결정되는 내막을 한 꺼풀 더 벗겨보자. 1983년 5월 20일 대통령 전두환이 이범석 장관에게 예정에 없던 버마 방문을 지시하기 전, 버마를 대통령 순방 일정에 끼워 넣으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버마 방문을 지시한 것은 여타의 방법으로 버마를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20)최병효 책 독후기20. 전두환, 이범석에게 버마 방문 강요‘1983 버마 공작’은 1981년 8월 시작된 ‘812 계획’으로 시작됐지만 그 음모는 전두환 정권과 레이건 정권 핵심 인사 몇몇만 아는 수준에서 매우 은밀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1982년 10월 9일 버마 외상을 부르고 1983년 4월 버마 교통체신부 장관과 철도청장을 데려와 ‘버마에 대한 체신 사업 지원 및 차관 제공’을 논의할 때까지, 5월 중순 버마 군 정보국장을 쳐내 버마 정보 권력을 무력화시킬 때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19최병효 책 독후기19. 버마 군정보국 해체의 수수께끼전두환이 레이건과 암호와도 같은 친서를 주고받으면서 ‘83년 북괴 테러’ ‘10월 IPU 방해 테러’를 발설하던 5월, 버마에서는 군(軍)정보국) 국장 틴 우(Tin U) 중장이 숙청되고 그 조직이 해체되면서 정보 및 보안 체계가 마비되는 지경에 처했다.전두환네가 1981년 8월 비밀리에 ‘북파공작 812 계획’을 개시할 즈음 네 윈의 대통령 양위(讓位) 공작으로 시작된 버마 권력 진공화 작업이 버마 군 정보국 해체로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18)최병효 책 독후기 18. “83년 테러” : 전두환의 예언과 레이건의 친서1983년 새해 벽두부터 전두환네는 또 공격적으로 대북 통일 선전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1981년 1.12 제의와 1982년 1.22 제의(소위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에 이어 1983년 벽두에 또 빈 깡통을 요란하게 흔들어댄 것이다. 마치 자신들이 남북의 화합과 평화통일을 바라기라도 하듯이. 전두환은 1월 18일 국회 연설에서 남북 최고당국자회담 촉구 발언을 이어갔고, 언론은 그의 말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17)최병효 책 독후기 17. 2차 리허설 ‘82 가봉 테러’ 시나리오앞글(16편)에서 전두환이 낮방송을 통해 노신영을 안기부장으로 보내는 기상천외한 인사를 단행한 이유 중의 하나로 ‘1983 버마 사건’ 2차 리허설 준비를 들었다. 노신영을 안기부장으로 보내고 이범석을 그의 자리에 앉히는 인사공작과 ‘2차 리허설’과의 연관성을 추리하는 것은 이 2차 리허설 때 이범석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전두환네가 아프리가 순방을 기획한 시점은 동남아 순방을 다녀온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16)최병효 책 독후기16. ‘허수아비 안기부장’ 노신영1981년 5월 말 유학성 안기부장 등 남한 정보부 책임자들을 미국으로 불렀던 부시가 11개월 만에 서울에 와 전두환과 나눈 ‘밀담’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 이웅희(李雄熙, 전 동아일보 기자)는 다음과 발표했다.[전두환 대통령과 부시 부통령은 26일 45분간의 단독 요담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세를 함께 우려하며 자유 진영이 결속하여 이에 대처할 필요성이 긴요하다는 등 국제정세 전반에 관해 의견을 교환 ... 부시 부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15)최병효 책 독후기15. 1981 : 전두환의 방미, 부시의 방한박정희는 1972년 4월 비밀리에 국방과학연구소에 “1975년까지 200km 사거리의 국산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라”는 명령(일명 ‘백곰 프로젝트’)을 내린 지 7년, 1978년 9월 26일 국산 유도미사일 ‘백곰’ 시험발사에 성공한 지 불과 1년 1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실록 박정희시대 (33)국산 미사일 개발」 1997.11.13 https://ww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