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현대사] 경제건설에서 사람을 중심에 세우다

-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

청산리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일성 수상(1960.2.)과 청산리협동농장 
청산리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일성 수상(1960.2.)과 청산리협동농장 

1950년대에 전후복구와 사회주의 개조를 마무리하고, 1960년대에 북은 전면적인 사회주의 경제건설 단계로 들어섰다. 앞에서 본 19619월 조선로동당 4차 대회에서 마련한 7개년 계획(1961~1967)에는 공업생산에서 기술혁신과 자립적 공업체계 입안, 농업생산에서 영농 기계화를 통한 생산력 증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근로자들의 9년제 기술 의무교육 등이 세부 목표로 제시되었다.

이런 7개년 계획은 천리마운동을 통해 이룬 빠른 사회주의 개조와 인민대중의 정치 교양을 긍정 평가하고 계승하는 한편, 사회주의 전면적 건설에서 새로운 사업체계와 방법, 이른바 새로운 사회주의적 경제관리체계을 필요로 했다. 일찍이 전후복구 및 사회주의 기초건설 과정에 자원 낭비 문제나 관료주의, 주관주의, 형식주의 같은 문제가 적잖게 발생한 바 있다. 기존의 (·공업 부문)경제관리체계와 거기서 파생된 문제를 방치한 채 7개년 계획의 성공적 수행과 사회주의의 안정적 건설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19611127~121일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42차 전원회의에선 경제에 대한 지도관리에서 당의 지도 아래 혁명적 군중노선을 관철하는 사회주의적 경제관리체계의 원칙이 제시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마련된 경제관리체계로 농업부문에선 일찍이 1960년에 제시된 청산리방법, 그리고 공업부문에선 1961년에 제시된 대안의 사업체계가 대표적이다.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는 기본적으로 당·국가기관이 협동농장·공장·기업소 등의 사업을 주도적으로 지휘하고, 사업과정에서 발생한 문제해결을 도와주는 형태의 사업방식이다.

먼저 청산리방법은 김일성 수상이 19602월 평남 강서군 청산리 소재 협동농장을 현지지도 한 데서 유래한다. 김 수상은 청산리 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면서 농민들과 함께 취식하고 일하였고, 청산리 일대의 각종 실태와 애로사항을 파악해 해결책을 적극 제안하였다. 여기서 상위 기관이 하위 기관을 도와주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도우며 현지에 내려가 실정을 알아보고 문제해결의 옳은 방도를 제시하고, 당 간부가 현지 근로자들 대상으로 정치사업(사람사업)을 잘해 근로자의 혁명적·창조적 적극성을 고양시키는 등을 내용으로 한 청산리방법이 탄생했다. 북은 청산리방법을 구현해 사업상 나타났던 관료주의·주관주의 등을 해소하고 상하의 일치단결을 이루어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자 했다.

청산리방법의 기본은 웃 기관이 아래 기관을 도와주고 웃 사람이 아래 사람을 도와주며 늘 현지에 내려가 실정을 깊이 알아보고 문제해결의 옳바른 방도를 세우며 모든 사업에서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우고 대중의 자각적인 열성과 창발성을 동원하여 혁명과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이 방법은 목전의 혁명과업을 성과적으로, 깊이 있게 수행할 수 있는 힘 있는 사업방법일 뿐만 아니라 일군들의 사상정치수준과 실무수준을 높이며 군중을 혁명화하는 힘 있는 교양방법입니다.”

이에 따라 군인민위원회에서 농촌 경영지도 기능을 독립시켜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산하에 농업기술자들과 농촌 경영담당 국가기업소를 두었다. 또 도농촌경리위원회를 신설하고 내각의 농업성을 농업위원회로 개편하여 당·국가에서 지방 소재 농업협동조합의 농업경영을 지도, 지원하는 형태의 농업지도체계를 완성하였다. 청산리방법을 통해 북은 농업부문에서 농민들의 열성과 창의성을 효율적으로 조직동원하게 되었고, 이로써 1960년대에 토지개간과 농업생산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청산리방법을 공장과 기업소에 적용한 것이다. 196111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수상이 경제 지도관리 및 운영의 전면적 개선과업을 제기하고, 평남 강서군(현 남포특별시) 소재 대안전기공장을 126~16일 열흘간 직접 현지지도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한 데서 유래했다. 김 수상은 대안전기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관리운영체계와 관리기구의 조직 정형, 관리일꾼의 활동과 생산지도 정형, 노동자들의 생활형편 등 공장의 관리운영사업 전반 문제를 파악한 다음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구상하였다. 그런 김 수상은 1215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내올 데 대하여>란 연설에서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로서 대안의 사업체계의 세부 방도와 체계를 제안하였다.

기업관리에 대중을 널리 참가시키며 생산에 대한 행정기술적 지도와 당적, 정치적 지도를 옳게 결합시키는 오직 한가지 방도는 지배인 유일관리제로부터 공장 당위원회의 집체적 령도체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공장·기업소에서는 기사장이 참모장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장에서 생산지도부와 계획부, 기술부들은 기사장이 통일적으로 지도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공업생산은 기술공정이므로 기술을 잘 아는 기사장이 생산을 통일적으로 지도하여야 합니다. 기사장은 계획부, 생산지도부, 기술부를 틀어쥐고 생산계획을 짜고 거기에 따라 기술 준비도 시키며 직장들에서의 계획수행 정형을 늘 알고 생산조직에서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으면서 생산을 지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공장에서 생산을 지도하는 체계를 이와 같이 참모부의 형태로 만들어야 군대에서 전투지휘를 유일적으로 하듯이 생산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청산리방법과 동일하게 당·국가가 현장의 공장·기업소 사업을 돕고, 정치사업·사람사업을 강화해 위가 책임지고 아래를 실질적으로 도와주는형태이다. 특히 기존에 공장·기업소 지배인·관리인이 단독으로 사업을 진행하던 것을 공장·기업소의 당()위원회가 집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토록 하고, 중앙에서 이를 지휘하고 지원·격려하는 형태로 바꿨다. 자세히 보면, 대안의 사업체계는 크게 공장기업소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체계-공장 참모부의 통일적집중적 생산지도체계-중앙집권적 자재공급체계 및 후방지원체계 3개의 체계로 구성된다. 공장기업소 당위원회는 공장기업소 운영 전반을 당 정책에 따라 집체적으로 총괄하고, 근로자들에 대한 조직사업과 사상사업을 담당한다. 공장 참모부는 기사장을 참모장으로 하고 휘하에 계획부, 기술부, 생산지도부를 둬 생산활동 전반을 총괄 지도한다. 중앙집권적 자재공급체계 및 후방지원체계는 상급기관(지배인)이 책임져 하급기관은 자재공급 및 후방사업에 몰두할 수 있게 한다. 즉 대안의 사업체계는 경제관리 실천에서 정치사업을 앞세워 근로대중을 조직동원하고, 생산 및 기업관리에선 상하가 단결하여 통일성을 이루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대안전기공장을 시작으로 김일성 수상은 안주탄광, 평양방직공장을 잇달아 현지지도하며 산업 전반에 대안의 사업체계를 적용하려 했다. 그 결과, 1964년엔 대안의 사업체계를 기초로 한 사회주의 경제관리체계가 완성되어 협동농장·공장·기업소 등 북의 인민경제 모든 생산 부문과 단위들이 사회주의 경제관리체계에 지도와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런 대안의 사업체계 아래서 북의 공업생산은 1961~62년 기간에 1.2배로 크게 성장하였다고 한다.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는 공통적으로 당·국가가 지방의 협동농장·공장·기업소를 지도할 뿐만 아니라 중앙의 간부가 현지에 직접 나가 인민대중과 협력하는 방식의 군중노선을 구현하였다. 그를 통해 사업과정에서 관료주의·주관주의와 상하 간 괴리를 해소하고 일치와 균형을 이루는데 목표를 두었다. 또 사회 전반의 이익을 고려해 계획의 일원화뿐 아니라 세부화를 이끌어내려 했다. 상부기관과 윗사람이 직접 내려가 하부기관과 아랫사람을 성심껏 돕고 지도하는 구조, 사업에서 정치사업과 사람사업을 앞세울 것을 강조한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는 중앙에서 일관된 하향식 명령체계인 소련 계획명령체계와는 구별되는 북의 독특한 사회주의 경제관리체계라고 하겠다. 또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에서 형성된 정치사업과 사람사업 우선의 원칙은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끌어올리는 주체의 정치방법의 기본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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