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병에 걸린 사람들

 

마스크를 쓴 채 강제로 노동하는 노예. 노예들이 수확물을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에 재갈(마우스 피스)을 물리고 마스크를 강제로 씌웠다. 마스크는 신체의 구속을 통해 노예들의 복종심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마스크를 쓴 채 강제로 노동하는 노예. 노예들이 수확물을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에 재갈(마우스 피스)을 물리고 마스크를 강제로 씌웠다. 마스크는 신체의 구속을 통해 노예들의 복종심을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지난 해에 영국 정부의 코로나 대책을 자문했던 전문가 그룹의 뒤늦은 양심고백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코로나 판데믹에 국민들을 잘 통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한 공포를 심어줘야 한다는 심리학자들의 사전 자문이 실재했고 이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영국 못지않은 공포 마켓팅과 이에 기반해 강력한 통제를 성공시켰던 한국의 주류언론들은 이런 고백을 외면했다. 정부도 K-방역의 성공을 자랑하기에만 바빴다. 주류언론들은 주요한 국제문제에서는 특히 더 그래왔듯 판데믹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플라스틱 원료의 마스크로 인한 쓰레기 문제는 차치하고, 이산화티타늄 같은 발암물질이 허용한계의 5배 이상이 검출되는 걸 포함해 많은 전문가들이 마스크 착용의 다양한 위험성을 수 차례 경고하는데도 모른 척 하는 것도 그 한 예이다. 그래서 한국 주류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는 판데믹 관련 정보는 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편파적이고 획일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작년 그 답답한 와중에도 한계는 있지만 SNS를 통해 접하는 유럽 시민들의 저항 활동은 가뭄에 단비처럼 숨통을 트여줬다. 한국은 거리두기나 영업 제한 등의 통제를 넘어 아직도 임상 진행 중인 mRNA백신 접종을 강제하고, 창안한 사람조차 진단검사로 부적합하다고 극구 반대하는 PCR검사를 강행하느라 물 쓰듯 국고를 쓰면서 국민들을 볶아대고 있던 때였다. 같은 시간 해외에서는 방역을 빌미로 과도하게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임상도 끝나지 않은 백신 강제 접종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정부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다양하면서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임상 진행 중인 물질에 불과한 백신과 마스크 착용이 신체에 가할 위험성을 포함한 방역 통제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해고와 암살을 각오하며 진실의 등대 역할을 하던 해이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특히 자신의 생명에 관련된 중차대한 일이니만큼 정부의 비합리적이고 일방적인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그 합리성과 적절성을 주체적으로 사고, 평가하는 지성이 발휘됐기에 가능한 일일 게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아직도 그런 지성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 판데믹 이후 특정 부분 사고를 멈춘 것 같은, 마치 공포를 심어주니 알아서 잘 통제되는 노예화 프로그램 설정으로 움직여지는 로봇같이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답답하다 못해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그런 특징이 가시적으로 잘 드러나는 것이 마스크 착용 같은 방역 부문이다. 이전에도 밝혔듯이 초기에 정해진 요일에 1인당 제한된 개수의 마스크를 사려고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추워도 긴 줄을 서던 데에서 보여지 듯, 이미 초장부터 공포 주입은 대성공이었다. 언론이 현란하고 집중적으로 투하하는 무서운 장면과 소식으로 자극된 공포는 국민들의 의식을 빠르게 잠식해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방역과 관련한 국가 차원의 강제나 권고내용에 대해서 합리성 점검은커녕 초보적인 의심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폐해는 일상적으로 지속되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간 여러 차례 유행을 겪으며 백신을 맞으나 안 맞으나, 1차만 맞으나 4차까지 맞으나 접종 여부와 맞은 회차가 무의미하게 확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점차 백신의 무용성과 부작용 문제를 논하며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는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마스크 착용은 바이러스 차단 실효성 여부나 부작용에 대한 의심 없이 여전히 견고하게 의무화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 지난 5월 초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참 뒤늦게 서야 실외 마스크 의무화를 해제했지만 한여름 푹푹 찌는 거리에는 여전히 마스크를 떼지 못하는 행인들이 넘쳐났다. 사람들은 잠깐만 써도 금방 마스크가 땀에 젖는 그 찜통 더위에서도 벗지 않았다. 이는 일찍이 마스크를 벗어 던진 해외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손흥민이 누비는 축구 중계 장면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붙어 앉아 입을 크게 벌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빠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스크 없이 침을 튀며 소리를 지르는 저들 보다 철통 같이 마스크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에서 확진자가 더 많이 나오고 있고 심지어 종종 세계 1위도 차지하는 사실을 보면서도 마스크 착용에 대한 문제 제기는 별로 없다. 참고로 미국은 50개 주중 백신패스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주에서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온 연구 결과도 있지만 이런 사실 자체는 알려지지도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를 벗고 의무화를 해제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상하리만치 마스크에 집착하며 더운 여름에도 이를 고수하고 감염병 지침 규정을 약간 완화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감염병 지침 5판에서 일반인이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기 위해 의학적 소견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6판에서는 없어지고 호흡이 곤란하면 벗을 수 있다고 변경했다. 또한 교육부는 <8판 유초등 및 특수학교 코로나19 감염예방 관리 안내서>를 발표하면서 마스크 착용시 호흡이 어려운 사람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을 변경하기도 했다. 아동들의 마스크 착용은 정서적, 신체적 학대적 요소가 있을 뿐 아니라 언어, 사회성, 지능 등 발달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어 시급한 조치가 필요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여간 두 지침 변경의 공통점은 주관적으로 호흡 곤란을 평가할 수 있고 그에 따른 마스크 착용 여부를 개인이 결정해도 된다는 말인데 이럴 바엔 마스크 자율화로 가도 될 터인데 굳이 저런 갈등의 소지를 남기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상 개인이 호흡 곤란을 이유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는 있으니 자기 권리를 찾으려는 사람과 착용을 강제하려는 공무원이나 업체 직원들간의 마찰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자칫 미착용자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요하다 강요죄나 직권남용죄로 고소될 수도 있다. 이런 불필요한 갈등의 소지를 마스크 의무화 해제를 통해 원천적으로 깔끔하게 차단할 수 있음에도 모처럼 손쉬운 국민 통제의 고삐를 쥔 당국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백신 부작용만큼이나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대해 우려하던 의료인들과 시민들이 꾸준히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최근 부산에서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탄 여성이 호흡이 힘들어 마스크를 코 아래로 내리자 버스기사가 큰 소리로 다그치며 마스크 착용을 압박하다 경찰까지 불렀던 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여성 승객은 끝까지 마스크를 코 위로 올리지 않았고 버스기사를 상대로 강요죄와 아동학대죄를 물으려다 기사와 소속 회사의 사과와 직원교육 등을 통한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받고 선처해준 사건에서 보여지듯 조금씩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위한 저항을 실천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은 여전히 똑같은 모습이다. 그렇게 깨끗한 공기를 좋아해 돈과 시간을 들여 일부러 찾아다니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산소가 태부족한 좁디좁은 틈에 코와 입을 집어넣고 그 공간에 자기가 내쉰 탁한 공기를 가뒀다가 다시 자기 몸으로 흡입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바이러스만 들어오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점진적으로 약화되어 가는 폐 기능 및 다른 신체 기능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건강의 기초가 되는 위생의 측면에서도 마스크는 우리 몸에 접촉하는 어떤 물건보다 비위생적이다. 하루 종일 한 개 많아야 몇 개로 버티는 마스크의 오염 정도를 생각해본다면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쓴다는 말이 단번에 무색해지는 걸 알 수 있다. 얼굴이 닿는 안쪽은 땀과 침, 각질과 화장품 등의 물질이 범벅이 되어 온갖 세균이 번식하는데 그 불결한 면을 신체 내부의 직접적인 통로인 코와 입과 밀착시키는 넌센스. 게다가 그 좁은 틈에 머물던 오염된 공기, 농도 높은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며 더 안전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코메디 한 편을 보는 것 같아 우스우면서도 씁쓸해진다.

또한 마스크가 바이러스를 차단한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그 바이러스가 묻어있게 될 마스크 바깥면에 대한 경계심은 없다. 수시로 마스크 겉면을 손으로 만지고, 식탁 위에도 놓고, 버릴 때 밀봉도 하지 않는다. 코와 입으로부터는 차단된다고 믿으며 손으로는 만지고 밀봉도 하지 않은 채 실내 쓰레기통에다 버리는 행동으로 어떻게 바이러스 차단이라는 난이도 높은 목적 달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마스크 안쪽은 병원균 천국이고 겉면은 그다지도 피하고 싶어 하는 바이러스 서식처인데 말이다. 더욱이 천에 붙으면 대기 중 에어로졸 상태보다 생존 시간도 몇 배 늘어난다고 한다. 바램과는 다르게 바이러스를 코와 입 가까이 붙이고 다니는 꼴이니 차라리 마스크를 벗고 면역을 키우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마스크 테두리에 본드나 강력풀을 발라 붙여 일체 얼굴과의 틈이 없게 해도 이미 바이러스는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마스크 천을 충분히 통과하고 있음을 애써 외면하며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호흡은 생명의 기초 활동으로 산소가 충분히 들어오고 이산화탄소가 제대로 배출되는 공기의 교환으로 우리 생명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코와 입을 그 비좁은 공간에 가두어 이런 기능이 치명적으로 방해받고 있는데 특정 바이러스만 안 들어오면 안전할 수 있다는 믿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되지도 않을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생명줄인 산소도 막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막으면서 무슨 수로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지켜내겠다고 그 옛날 가축이나 노예들에 씌웠던 입마개를 소환한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것인지...하여간 한국민들은 3년 가까이 마스크 속 더러운 공기로 호흡하면서 면역은 떨어지고 점점 더 감염에 더 취약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 듯 하다.

이제 스스로는 마스크를 벗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을 보다 못한 의사단체 코로나 진실규명 의사회에서는 지난 8.31일 성명서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내용을 보면 ‘90프로의 국민들이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벗으면 두려움과 불안을 느껴 강박적으로 착용하는 증상의 마스크 병에 감염되었다며 이는 정부당국과 어용의사 몇 명의 미개하고 비과학적인 암시를 통해 주도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획일화되고 만남과 소통 그리고 얼굴을 잃게 만드는 마스크 의무화는 시각을 자극하여 무의식을 점령하고, 최종적으로 전체주의적 의무화를 단행하여 깰 수 없는 환상과 어겨서는 안되는 절대적 교리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며 당장 의무화를 해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상기했듯 마스크는 약간의 심리적 위안일 뿐 감염예방에 효과 없었음을 대유행 기간 경험했음에도 세속의 권력자나 다수의 여론에 부응해야 안전하다는 노예의식과 맹신에 의해 지속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백번 옳은 지적이다. 국민들을 이런 마스크병 환자로 만들어놓고 국내외 고위직 인사들이 마스크 착용에 있어서 얼마나 자유롭고 스스로에게는 관대한 지 조금만 눈 여겨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공포로 잠식된 의식은 평등의 감각도 잊은 지 오래라 이런 차별적이고 이중적인 현상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판데믹 초기 미국 질병청이 거금을 지원해 수행했던 큰 규모의 연구에서 마스크 착용은 바이러스 차단에서 실효성 없음이란 결론이 이미 난 바 있고, 마스크 착용, 특히 장기착용의 부작용을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 사회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이런 기존의 결론을 소수 관변 전문가들이 무리하게 뒤집은 주장에 입각한 정책으로 국민들의 건강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으나 사람들은 순한 양처럼 순응하고 있을 뿐이다. 초기부터 퍼부은 공포 작전은 이렇게 성공했다. 그들이 효과 있다니 있다고 믿는 것이고 정부가 하라니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전문가 의견을 귀 담아 들으려는 노력도 없었다. 소수 전문가에 의존하면서도 전방위로 공권력을 휘둘러대는 통에 국민들은 안 그래도 두려운 바이러스에 더해 공권력의 협박에 순치되어왔다. 여론을 통해 공포가 주입되고, 불이익으로 협박되어 정부 지침에 맹종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국인들은 마스크병 환자가 되었다. 과도한 공포 주입으로 시작된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사람들의 몸과 함께 정신도 무너뜨리고 있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다시 영국 전문가 집단의 공포마켓팅 조언에 대한 양심고백을 환기해보면, 그들이 진짜 양심이 찔려서 반성하는 차원에서 저런 고백이 나왔는지 자칫 책임 추궁을 당할까봐 지레 설레발을 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시인하는 영국 전문가 그룹과 달리 한국은 방역을 주도했던 관변 전문가, 관료 및 정치인들은 일체의 반성이 없다. 그렇게 잘 따라줬건만 확진 1위국이 되어도 계절적 대유행 탓만 하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그렇게 맞으라던 백신으로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중증 장애가 생겨 모든 일상을 포기해야 하는 결과가 도래했어도 인정과 반성은커녕 위로도 없다. 설상가상 정권 교체와 함께 바뀐 현 질병청장은 백신 관련 기업 주식투자 스캔들까지 터지고 있는 상황이다.

방역 분야는 위기를 틈타 무소불위한 폭군이 되어버렸다. 나라 돈을 쓰고 국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감시와 비판에서 벗어나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너무 쉽게 침해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경각심은 너무 미약하다. 안타깝지만 이런 현상은 공포와 맹신으로 일관한 국민이 도달하게 된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꽤 흘렀고 정책을 바꿔내야 할 많은 경험과 근거 자료들이 나오고 있어 조금만 용기를 내면 진실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보건, 의료분야는 대단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영역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 대중들의 맹신을 이용해 어디까지 국민을 통제하려 하는 지, 판데믹이라는 특수를 만들고 이용하는 의료자본들이 국가기관을 통해 무슨 짓을 하는지, 마스크병에 걸린 국민들의 육체와 정신이 무너지는 사이 사회, 경제적 위치는 어찌 되고 있는지 이제 낱낱이 따져 갈무리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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