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비린내 나는 비극적 유산

https://www.globaltimes.cn/page/202206/1269357.shtml

사진: 2022년 6월 26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앞서 시위대가 NATO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2022년 6월 26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앞서 시위대가 NATO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편집자 주:

러시아-우크라이나 군사 갈등이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갈등에 기름을 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6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NATO는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과 관련해서 러시아의 지속적인 우려를 강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호주, 일본, 한국,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4개국의 지도자들도 NATO 정상회의에 초대되었다. 이미 유럽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이 무력조직은 이제 아시아에 간섭하기 위해 자체적인 아시아 태평양 지부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 조직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어떻게 그것이 냉전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생겨났고 점차 세계평화의 독이 되었는가? 왜 이 군사동맹이 아시아로 '암흑의 손'을 뻗치는 것일까. 글로벌 타임스는 NATO가 어떻게 팽창하고 있는지에 대한 4편의 기사를 연재한다. 이것은 두 번째 글이다.

번역: 이승규.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NATO는 창설 50주년을 맞은 19994, 냉전 이후 처음으로 동진했다. 환구시보 기자는 이어 나토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 주재하면서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가 NATO가입을 기념하는 국기 게양식을 목격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NATO가 공식적으로 중부유럽과 동유럽 접수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당시 나토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대규모 폭격에도 버튼을 눌렀었다. 1999324일 시작된 코드네임 '연합군 작전(Operation Allied Forces)'78일간 지속돼 2,500여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숨지고 100만 명 이상이 피란했다.

나토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이 군대를 배치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며, NATO 회원국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던 주권국가를 목표로 삼았다. 그 군사행동은 NATO의 발전논리가 집단안보를 위한 군사방어 전략에서 이른바 '인도적 개입 임무'라는 기치 아래 전통적인 유럽 방위구역을 넘어서는 전략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NATO가 이른바 인도주의적 깃발을 내걸고 '부활'했고 미국은 다시 한 번 이념적 깃발 아래 서방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칼자루를 찾았다.

그러나 NATO의 확대는 비서방 세계의 우려, 즉 누가 인도주의적 위기를 결정하며 주권을 초월한 개입의 국제법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과 나토가 최종 결정권을 갖게 되며 인도적 위기라고 믿고 판단하기만 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의미다. NATO 확장 이면의 논리는 결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었다.

사진: 미국 도버 공군기지에서 해외 군사판매 임무 중인 한 공군이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싣고 우크라이나로 향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진: 미국 도버 공군기지에서 해외 군사판매 임무 중인 한 공군이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싣고 우크라이나로 향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속국

 

나토는 전쟁의 산물이다. NATO1949년 창설된 이래 항상 미국과 유럽의 냉전 전략을 유지하고 홍보하는 군사적 도구였다. 또한 이데올로기를 통합하고 발전시키려는 내재적인 동기를 가진 정치집단이다.

초기 나토의 주요 임무는 독일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으면서 군사방어를 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유럽의 양대 군사 블록인 NATO와 바르샤바 조약의 대립과 고조되는 억지력은 세계평화에 큰 위협이 되었다. 냉전이 '열전'으로 번지지 않은 것은 쿠바 미사일 사태와 같은 형태로 긴장되는 순간이 있었지만 양측의 억제행동이 지속적으로 고조되면서 '공포의 균형'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두 주요 블록 사이의 대립은 잘 알려진 "힘의 균형" 이론의 가장 현실적인 구현이 되었다.

NATO는 또한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정치 블록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은 서로에 대한 공포감이 컸다. 그들은 또한 상대방이 촉진하는 문명 유형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냉전시대 미국의 전략을 억지력, 경쟁, 협상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경쟁이 가장 중요했다. 억제와 협상은 모두 군사력과 세력권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전략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노력은 이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루어졌다.

두 블록의 대립은 서로 다른 이념의 격렬한 충돌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세계에서 서구 문명의 팽창 속도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확장은 냉전시대 많은 지역에서 전쟁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군사도구로서 NATO는 항상 미국의 글로벌 전략의 내용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미국이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야심을 바꾸지 않는 한 NATO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국제 뉴스채널 알자지라의 수석 정치분석가인 마르완 비샤라가 지적했듯이, "NATO는 분명히 서구 자본주의 민주국가들의 특권적 클럽의 군사조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픽: 미국과 NATO, 캐나다의 방위비 지출 (2017-2021)
그래픽: 미국과 NATO, 캐나다의 방위비 지출 (2017-2021)

 

서구 문명을 확장하기 위한 군사 도구

 

NATO의 확장 논리를 따져볼 때 199010월 동독과 서독의 합병이 유럽 지정학의 진정한 분수령이었던 만큼 가장 먼저 분석해야 한다.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유럽의 통합과정이 중앙유럽의 주요 강 중 하나인 엘베 강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합병된 독일은 NATO 회원국을 유지하며 블록의 힘을 더욱 강화하고, 서유럽, 중앙유럽, 동유럽 국가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강화했으며, 안보의식을 강화했다. 1999년 폴란드, 체코, 헝가리가 NATO에 가입했다.

NATO의 동쪽 확장 이면에는 미국의 전략적 지배력이 뚜렷이 드러난다. 미국은 NATO를 통제하고 유럽과 전 세계에 대한 패권적 조작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확장을 사용한다.

1998128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북대서양조약은 집단방위에 대한 약속을 포함하며, 또한 북대서양 지역 너머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동의 위협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NATO에 가입한 후 폴란드는 미군의 주둔을 요구했다. 3,000명의 미군이 폴란드 군대를 훈련시키기 위해 교대로 폴란드에 주둔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NATO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발트해 연안에 주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 중 어느 것도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키지 못했다. 2018년 폴란드 국방부는 폴란드 주둔 미 기갑사단 상설 배치에 15~20억 달러 규모의 재정 지원까지 제안했다고 미국 디펜스뉴스가 20185월 보도했다.

유럽의 지정학은 NATO의 동쪽 확장 이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냉전이 시작된 이래로 미국이 유럽에서 추진한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구 유럽"의 부흥은 또한 이 전략의 일관성을 충족시키고 강화시킨다.

이러한 이념적 일관성의 가장 주목할 만한 측면은 바로 처음부터 세계정복을 사명으로 삼았던 서구 문명의 팽창적 본질이다. 따라서 군사도구로서 NATO의 방어는 강력한 확장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NATO가 중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에 강한 어필을 한 것은 구소련권으로부터 갈라진 지 얼마 안 된 국가들에게 주권적 방어능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NATO 자체도 이념적 매력이 있다.

NATO는 또한 새로운 유럽 회원국에 대한 이념적 구심력을 강화하여, 새로운 NATO 회원국이 제도 건설, 국경문제, 민족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하였다. 이것이 일부 NATO 회원국들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위기가 경솔한 결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꺼리는 주된 이유이다.

 

널 삼킬 수 없다면 박살내버릴 거야

 

당시 일부 NATO 전문가들은 NATO 확장의 이상적인 결과는 '개혁된' 러시아를 유럽 체제에 통합해 유럽을 '영구적 평화의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럽의 현실은 곧 그것이 단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1989년 소련을 기존의 국제체제로 통합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억제를 넘어(Beyond Containment)" 전략을 제안했다.

그러나 부시의 후임자인 빌 클린턴은 전략적 목표를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고"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미국에 전략적 위협을 가하는 지배적인 힘의 출현을 막는 것으로 바꾸었다.

"너를 삼킬 수 없다면, 널 박살내버릴 거야." 이것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어떤 나라를 향한 전략적 논리이다. 전략적으로 NATO는 러시아를 이 블록에 통합해 러시아가 세계정치와 경제시스템에서 미국의 지배에 굴복하도록 하거나, NATO가 러시아를 무너뜨려 더 이상 대항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NATO의 확장, 즉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명의 질서는 유럽, 나아가 세계질서가 돼야 한다는 논리가 매우 완강하다. 다른 나라들은 이 논리를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미국과 서방의 잠재적인 적이 될 수도 있다.

냉전 종식은 NATO가 수호하고 보호하겠다고 자랑해온 '자유민주주의'란 기본원칙이 모든 국가가 지켜야 할 공통의 규범으로 세계에 소개될 수 있다는 미국의 믿음을 강화했다. 이러한 이해는 세계를 단순히 "민주적" 파벌과 "비민주적" 파벌로 나눈다. 미국의 이 완강한 논리는 냉전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반대로 미국은 다른 나라와 지역에서 정권교체를 촉발하는 데 열심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은 또한 "역사의 종말"과 같은 이론을 제기하였다. 이 같은 논리는 스스로를 방어기구라고 부르는 NATO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주권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NATO1992년 보스니아 전쟁과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참여했으며 1999년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에 대한 공중폭격작전을 수행했다. NATO는 또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참여했으며, 리비아 내전과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군사분쟁에 개입했다. 이러한 모든 군사행동은 관련 국가들에게는 지속적인 비극을 가져왔으며 세계에는 비극적인 인도주의적 유산(역자주: 인도주의의 탈을 썼지만 사실은 비인도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을 가져왔다.

NATO의 확장 목표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태평양지역과 전 세계에 직접 투영됐다.

오늘날, 2020년대에 우리는 여전히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가능하다면, 어떻게 다른 문명, 이념, 정치체제, 그리고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가진 나라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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