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진보-민중세력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전면에 내걸고 광범위한 대중을 조직하여 강력한 투쟁을 벌여 기성 정치권과 헌재를 압박하고 기어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이끌어내야 하겠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반 윤석열 투쟁은 물론 「국가보안법」 체제의 진정한 기획・수혜자인 미국에 대한 강력한 투쟁으로 더욱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 안광획.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와 막걸리 보안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회의(2022.08.11.)에서 발언하는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과 8월 19일 담화문의 일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회의(2022.08.11.)에서 발언하는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과 8월 19일 담화문의 일부. 

지난 819, 북의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직전의 윤석열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관련한 논평이 담긴 담화를 발표하였다. 담화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내놓은 이른바 담대한 구상’, 반공·반북 일색의 발언, 한미일 협력 강화 방침 등에 대한 비판과, 817일 북의 순항미사일 발사훈련과 관련한 미국과 남측 당국의 분석*을 조소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김여정 부부장의 논평에 대한 남측 언론의 보도 중 일부. MBC 뉴스데스크 방송 캡쳐.
김여정 부부장의 논평에 대한 남측 언론의 보도 중 일부. MBC 뉴스데스크 방송 캡쳐.

김여정 부부장 담화 이전에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8.15 경축사의 문제점이나 이른바 담대한 구상의 허무맹랑함과 비현실성**, 미국 및 남측의 엉터리 분석 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리라 보고 본고에서는 굳이 길게 논평하지는 않는다. 김여정 부부장의 신랄한 비판도 비판이지만, 담화에서 큰 주목을 받은 내용을 꼽자면 단연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는 구절이라 할 수 있겠다.

지도: 8월 17일 북의 순항미사일 훈련에 대한 미국/남측의 분석과 김여정 부부장의 지적.
지도: 8월 17일 북의 순항미사일 훈련에 대한 미국/남측의 분석과 김여정 부부장의 지적.

* 당시 미국과 남측 당국은 북의 순항미사일 발사 장소를 평양시 인근 온천비행장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김여정 부부장은 이에 대해 제원이나 발사시간 및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비웃으며 평안남도 안주시 청천강 하구에 위치한 금성다리임을 밝힌 바 있다.

**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북이 핵개발을 중단한다면 경제지원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담대한 구상14년 전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 3000’을 그대로 베낀 것에 불과하다. 이미 파산당한 구상을 다시 들고 나온 것에서 남측의 극우세력이 얼마나 북맹(北盲)에 빠져있고 시대착오적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캡쳐: 김여정 부부장의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 담화에 대한 대중사회의 반응
캡쳐: 김여정 부부장의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 담화에 대한 대중사회의 반응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는 김여정 부부장의 발언은 남측 대중사회에 화제가 되며 빠르게 퍼졌다. 기사 댓글이나 인터넷 게시판 등지에서도 마음이 통일되었다’, ‘이북식 팩트폭력 등의 글이 올라오며 공감을 넘어서 일종의 풍자 거리(meme)에 까지 확대되는 모양새이다. 임기 초부터 청와대 졸속이전, 숭미사대주의와 친일 외교, 폭우참사에 대한 부적절한 행태 및 망언, 경제·방역 대책 실종 등 각종 정책 실정과 이준석 대 윤핵관으로 대표되는 정부여당 내의 저열한 권력쟁탈전으로 정권 지지도가 나락(20~30%)으로 곤두박질치는 와중에, 대중사회에서의 이와 같은 분위기는 필연적이라 하겠다.

한편, 이번 김여정 부부장의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담화와 이에 대한 남측 대중사회에서의 화제와 흥행(?)을 보면서 필자는 이전 시기 막걸리 보안법이 떠오른다. 갑자기 웬 뜬금없이 막걸리 보안법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최근의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에 대한 남측 대중사회의 반응은 국가보안법상으로는 얼마든지 찬양·고무죄(7)로 잡아넣을 수 있지 않은가?

그림: ‘막걸리 보안법’을 풍자한 다양한 만평들. 한겨레, 일요시사 등
그림: ‘막걸리 보안법’을 풍자한 다양한 만평들. 한겨레, 일요시사 등

막걸리 보안법’, 그 어원에 대해서는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홧김에 북이나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였다고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잡아갔다는 일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나, ‘사소한 것을 가지고 막 걸고 든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는 등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걸리 보안법과 관련한 다양한 어원들은 60~80년대 군사정권기 당시 파쑈독재 세력이 군사파쑈독재를 합리화하고 민중을 탄압하고자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로 마구잡이로 악용해 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군사정권기 막걸리 보안법의 다양한 사례들 중에서 일부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진: ‘막걸리 보안법’ 피해자 故 홍제화와 형의 재심 판결을 대신 받는 동생 홍제선씨. 제주의소리.
사진: ‘막걸리 보안법’ 피해자 故 홍제화와 형의 재심 판결을 대신 받는 동생 홍제선씨. 제주의소리.

- 1968, 한 요리사가 모종의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선량한 사람을 왜 괴롭히느냐, (민주)공화당은 공산당보다 못하다.”라고 말했다가 재판에 회부되어 1심에서 징역 16개월,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 1970, 철거민 김모씨는 자신의 집을 무단으로 철거하는 철거반원들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 김일성이보다 더한 놈들아!”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찬양고무죄로 1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1981727일 밤, 제주 조천읍 출신인 홍제화씨는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난 1124일에 돌연 홍제화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쳐 홍제화를 연행해 갔다. 그 이유는 술자리에서 김일성 원수가 정치를 잘한다. 역시 영웅은 영웅이다. 전두환은 어려서 정치하기는 틀렸다. 박정희가 뭐를 잘했다고 영웅이라고 하느냐?”고 발언했다는 것이었다. 모진 고문과 취조 끝에, 홍제화는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으로 1982792심에서 징역 8개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고 그해 8월 만기출소하였으나, 고문후유증으로 장애(정신지체 2)를 얻고 말았다.*

- 1986, ㄱ씨는 술자리에서 취한 상태로 다른 손님과 시비가 붙었는데, 홧김에 김일성 만세를 외쳤다가 찬양고무죄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 1986, 친척 집에 잔치를 갔다가 만취한 김모씨가 버스에서 기사와 시비가 붙었는데, 이 과정에서 무심결에 나는 공산당이다. 공산당이 뭐가 나쁘냐, 잡아넣어라.”고 말했다가 1심에서 찬양고무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 홍제화씨의 사례는 2006년 진실화해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가폭력으로 인정받았고, 이후 재심을 거쳐 결과적으로 20191212일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당사자인 홍제화씨는 고문후유증과 장애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201875일에 향년 76세로 이미 생을 마감한 뒤였다.

이렇듯, 군사정권기에는 정말 사소해 보이는 것들도 단지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고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명목으로 막걸리 보안법을 걸어 민중의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탄압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막걸리 보안법의 악명은 단순히 쌍팔년도 현대사의 암울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혹자는 무슨 21세기에 저런 어처구니없는 시대착오적인 사례가 대명천지에 벌어지겠냐?’,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된 것 아니였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믿기 어렵겠지만, ‘막걸리 보안법은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엄연한 현실이다.

사진: 현재의 ‘막걸리 보안법’ 대표 피해 사례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김호 대북사업가, 안소희 전 파주시의원, 「혁명동지가」 작곡자 음악가 백자 등.)
사진: 현재의 ‘막걸리 보안법’ 대표 피해 사례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김호 대북사업가, 안소희 전 파주시의원, 「혁명동지가」 작곡자 음악가 백자 등.)

어느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남--미 간의 종전평화협정을 제창한 것을 두고 반란을 획책 내지는 선동하였다고 조작하여 징역 9년형을 선고하고 해당 정치인이 속한 정당은 위헌 정당으로 강제 해산시킨 사례, 한 예술가가 북에서 운영하는 SNS 계정의 글을 풍자 목적으로 공유하였다가 찬양고무죄로 구속한 사례, 대북 사업가가 남북 교류협력 차원에서 북과 교류한 것을 간첩행위랍시고 실형을 선고한 사례, 진보정당의 한 정치인이 당원 행사에서 북의 노래*를 제창하였다는 이유로 찬양고무죄를 걸어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한 사례 등.... 이와 같은 사례들은 막걸리 보안법이 단순한 쌍팔년도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현실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해당 노래는 혁명동지가로, 북의 혁명가요이긴 커녕 남측의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 소속 음악가인 백자가 경기남부총련 노래패 천리마 활동 시절에 작사작곡한 민중가요일 따름이다.

사진: 지난 12월 구속기간 만료로 출소한 이정훈 연구위원과 최근 압수수색당한 정대일 연구실장,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사진: 지난 12월 구속기간 만료로 출소한 이정훈 연구위원과 최근 압수수색당한 정대일 연구실장,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그리고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요 최근에도 막걸리 보안법사례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바로, 본 연구원에서 통일운동 차원에서 학술연구를 진행한 것을 두고 회합통신 혐의로 엮어서 2021년에 이정훈 연구위원을 구속하였다가 구속기간 만기로 출소한 사건과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북 바로알기 운동 차원에서 보급한 것*을 두고 찬양고무죄로 엮어서 며칠 전 연구원을 압수수색하고 김승균 민족사랑방 대표와 정대일 본 연구원 연구실장을 입건한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던가?

* 회고록은 이미 대법원에서도 합법적으로 출판 허가를 낸 바 있다.

이렇게 막걸리 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앞서 소개한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에 막걸리 보안법을 떠올리는 것은 뜬금없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심각하게 고민해볼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정권 인사를 서초동 검사 출신들로 일색화하고, 임기 초부터 근본적 모순성과 자체적인 무능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윤석열 정권이 위기 돌파 차원에서 야당과 시민사회에 대해 전방위적인 사정정국을 시도하는 상황 속에서, 김여정 부부장의 윤석열 인간 자체가 싫다는 발언이 대중사회에서 화제가 된 것을 찬양고무죄로 걸어서 시민사회에 대한 공안탄압을 시도할지 누가 알겠는가?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사진: 국가보안법 폐지 교육센터 1차 교육위원 워크샵. 2022.06.25.
사진: 국가보안법 폐지 교육센터 1차 교육위원 워크샵. 2022.06.25.

결국, 민중들의 사상표현의 자유 보장과 분단체제 종식뿐 아니라 현재에도 정권분단체제 유지 차원에서 진행되는 저들의 막걸리 보안법의 광범위한 악용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도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을 하루빨리 철폐해야 하는 것이다.

* * *

사진: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가보안법」 7조 폐지를 촉구하는 국가보안법 7조 폐지운동 시민연대의 기가회견. 2020.05.21.
사진: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가보안법」 7조 폐지를 촉구하는 국가보안법 7조 폐지운동 시민연대의 기가회견. 2020.05.21.

오는 915일에는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71항 및 5(찬양고무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두고 공개 변론이 시작된다. 헌재에서 국가보안법폐지 여부를 심판하는 것은 이번이 8번째로, 폐지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어찌 보면, 이번 헌재 위헌법률 심판은 현 윤석열 정권하에서 그나마 수월하게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 할 수 있다.

이와 맞물려, 수년 전 민중이 마련하여 준 민주당 정권과 압도적인 국회 의석(180)이란 유리한 조건 속에서도 민중을 믿지 않고 미국에 굴복하여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국가보안법폐지 기회를 계속하여 미뤄 버린 기성 정치권이나, 민중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맞물린 국가보안법의 폐지 여부를 법조인들에게 또다시 맡기게 된 현 상황을 생각하면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성 정치나 법조인에게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개척한다"는 기본적이면서도 명쾌한 진리는 이 국가보안법폐지 투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결국, 진보-민중세력이 국가보안법폐지를 전면에 내걸고 광범위한 대중을 조직하여 강력한 투쟁을 벌여 기성 정치권과 헌재를 압박하고 기어이 국가보안법폐지를 이끌어내야 하겠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반 윤석열 투쟁은 물론 국가보안법체제의 진정한 기획수혜자인 미국에 대한 강력한 투쟁으로 더욱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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