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번에는 수 년 전 『설국열차』의 경우처럼 단순히 세계적인 ‘K-문화’ 열풍의 성공사례로 기억되거나 ‘조종사 또는 관리자’(윌포드/이병헌)만 갈아치우는 전철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문을 부수고 열차 바깥세상으로 나가고자 했던 송강호와 각성한 이정재가 이병헌을 위시한 게임 관계자들에게 게임 체계 자체를 파괴할 것을 천명한 것처럼, 근본적인 틀(분단체제와 식민지하의 예속자본주의체제)을 깨부수고 체제 및 사회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인가?

여러모로 후자의 실현을 위해서 진보/민중 진영의 역할과 임무가 막중하다 하겠다. 그리고 그 답은 진보/민중 진영의 자기혁신과 실천을 통한 대중사회에 대한 조직과 정치사상적 각성이 될 것이다.

저자: 안광획(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과 영화 『설국열차』(2013): 단순히 관리자만 바꿀 것인가, 아님 틀을 깨부술 것인가?

(드라마 『오징어 게임』 포스터)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내놓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화제를 몰며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하고 있다. 일찍이 넷플릭스에서 군사경찰 탈영체포조를 소재로 한 드라마 『DP』가 넷플릭스를 통해 나오며 화제가 되었는데, 얼마 뒤에 『오징어 게임』이 나와 흥행하면서 넷플릭스는 연달아 호재(?)를 맞은 격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장면들. 패배자는 처형한 뒤 소각하며, 부패한 VIP들은 게임 장면을 경마 경기 관람하듯 즐긴다.)

 

‘여러 이유로 실패하여 사회에서 나락에 떨어진 이들이 총 465억 원의 상금을 노리고 벌이는 죽음의 게임’을 줄거리로 하는 『오징어 게임』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개인이기주의와 상호파괴’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과 폭력성, 그리고 그 위에서 모든 것을 통제조작하고 즐기는 세력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요약된다. 이외에도 작중에서 등장한 다양한 소재 및 설정*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많이 나온 바 있으므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쌍용자동차 파업 투쟁을 연상케 하는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의 ‘자동차공장 해고노동자’ 설정, 결말에서 주인공이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다. 아직도 사람을 믿는가?’라는 흑막의 주장에 전면 반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겐 희망(신뢰, 연대)이 있다’는 것을 내기에서 이김으로써 역설하는 부분 등.

 

(영화 『설국열차』 해외판 포스터)

 

한편, 이번 『오징어 게임』의 대중사회에서의 화제와 흥행은 여러모로 2013년에 크게 흥행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를 연상케 한다. 영화 『설국열차』는 『오징어 게임』과 비슷하게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다.

『설국열차』의 개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류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기권에 뿌린 냉각물질은 오히려 빙하기를 야기하였고, 그 결과 인류문명은 멸망하였다. 이 상황에서 윌포드(애드 해리스 분)가 빙하기를 대비하여 개발했다는 대륙간 순환열차가 인류의 유일한 피난처로 부상하였다.

일찍이 표를 구매한 상류층은 앞쪽 객실에서 풍족하게 살게 되었지만, 표를 구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몰려든 하층민의 경우 꼬리칸에 객실을 설치하여 수용되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 결과, 열차에서 앞칸과 꼬리칸 사이에 극심한 빈부격차와 계급차별이 발생하였고, 꼬리칸에 수용된 하층민들은 열악한 식량사정 및 생활환경, 폭력적 통제체제에 힘들게 살아갔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결국 열악한 환경과 억압적 체제를 견디지 못한 꼬리칸의 승객들은 커티스(스티브 로저스 분)를 필두로 항쟁을 일으켜 꼬리칸 관리자들을 죽이고 일시적인 해방을 맞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주인공 일행은 꼬리칸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결의하고, 열차 구조에 통달한 열차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분)를 포섭하여 도움을 받아 전진해 나간다. 진행과정에서 주인공 일행은 열차 관리자들의 탄압에 맞서 싸우며, 앞칸의 상류층들의 부패방탕한 생활상이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열차 제작자 겸 조종사 윌포드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선전교육 등을 접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항쟁을 주도한 커티스가 열차 조종사 윌포드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 과정에서 정신적 지주와 같았던 장로 길리엄(존 허트 분)이 실제로는 윌포드와 절친한 친구에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진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또한, 열차 내에서 자행되어 왔던 꼬리칸 승객들에 대한 학살이나, 꼬리칸에서의 항쟁 역시 ‘객실 내 생태계 안정’을 명목으로 관리자들이 주기적으로 조작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혼란에 빠진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 커티스는 자신이 지휘한 항쟁이 열차 자체의 근본적 한계는 놔두고 단순히 열차 조종사(윌포드)만 갈아치우는 것과 다름없었음을 깨닫게 되고, 열차 문을 부수고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남궁민수의 제안*에 공감하게 된다. 결국, 커티스는 남궁민수와 함께 목숨을 던져 열차 문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폭발 과정에서 이들이 목숨 바쳐 구한 남궁민수의 딸 요나(고아성 분)와 흑인 소년**이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열차 밖으로 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 이때 세상은 빙하기의 혹한에서 벗어나 북극곰 같은 생물이 살 정도로 온화해진 상황이다.

** 항쟁에 참여한 흑인 여성의 아들로, 영화 초반에 관리자들에 의해 납치되어 조종칸에서 부품 역할로 동원당하고 있었다.

『설국열차』의 문제의식과 주제는 다음과 같다. 대륙간 순환열차가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뜻한다면, 커티스(스티브 로저스)와 최하층 꼬리칸 승객들의 항쟁은 민중들의 대규모 항쟁을 뜻한다. 그리고 커티스가 열차 제작자 겸 설계자 윌포드(애드 해리스)를 죽이고 열차 조종사가 되는 것은 부르주아민주주의 체제에서의 정권교체에 해당하며, 남궁민수(송강호)가 꿈꾼 ‘문을 부수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정치·사회체제 자체를 바꾸는 혁명을 뜻한다.

즉, 영화는 ‘최선두의 조종사를 갈아치우는 것이 아니라, 열차 문을 부수고 세상을 나가는 것’,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닌 체제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는 『오징어 게임』에서 겉은 ‘공정’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생존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기주의적/상호파괴적인 죽음의 게임은 단순히 게임 관리자 ‘프론트맨’(이병헌 분)을 처치해 봤자 동물탈을 쓴 타락한 ‘VIP’들이 게임을 체계적으로 조작하고 그 장면을 경마 관람하듯 즐기는 이 틀 자체를 깨부숴야 함을 역설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설국열차』가 나왔던 2013년 당시엔 극우 수구정권(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시기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영화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과 주제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비록 영화의 주제의식에 대해 분석한 평론은 당시에도 많이 나왔지만, 그 자체가 대중사회를 각성시키진 못한 것이다. 단지 『설국열차』는 천만 관객 흥행과 각종 영화제에서의 수상 및 세계적 한류 열풍 확산의 성공적 사례로써 부각되었을 뿐이었다.*

* 정작 영화를 제작한 봉준호 감독이나 주연을 맡은 배우 송강호는 정권에 의해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어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영화 속 비슷한 상황은 영화개봉 수 년 뒤인 2016~2017년 탄핵정국과 촛불혁명이라는 기회로 찾아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극우 수구정권에서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근본 체제의 변혁을 가져오진 않았다. 촛불혁명의 열망을 담아 출범한 현 문재인 정부와 정부여당인 민주당은 지난 4년 동안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에 미진하여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다가, 과거 정권을 주도했던 극우 적폐세력은 다시금 부활을 꿈꾸며 반격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영화에서 남궁민수가 역설했던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제의식보다는 영화 초반에 커티스가 주도했고 최종보스인 윌포드 역시 바라고 있던* ‘열차 조종사만 바뀐’ 것으로 끝난 셈이다.

* 윌포드가 커티스의 항쟁을 사실상 묵인한 것은 후반부 대화에서 드러난다. 윌포드 자신은 노화하여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었기에 자신이 맡은 열차 조종사의 역할을 계승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마침, 항쟁을 주도하여 앞칸까지 온 커티스가 윌포드에게 있어선 적임자였던 것이다.

(영화 『설국열차』의 주인공 송강호의 ‘나는 닫힌 문을 열고 싶다’ 포스터와 드라마 영화 『오징어 게임』 결말부에서 머리를 염색한 이정재)
(영화 『설국열차』의 주인공 송강호의 ‘나는 닫힌 문을 열고 싶다’ 포스터와 드라마 영화 『오징어 게임』 결말부에서 머리를 염색한 이정재)

그리고 시간은 흘러 ‘가면을 쓴 부르주아 통치배들이 철저히 조작한 체제 하의 공정한 경쟁이란 허울을 쓴 이기주의적/상호파괴적 죽음의 게임, 그 틀을 근본적으로 깨부숴야 한다’는 종자를 담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흥행하는 2021년 가을이다.

과연 이번에는 수 년 전 『설국열차』의 경우처럼 단순히 세계적인 ‘K-문화’ 열풍의 성공사례로 기억되거나 ‘조종사 또는 관리자’(윌포드/이병헌)만 갈아치우는 전철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문을 부수고 열차 바깥세상으로 나가고자 했던 송강호와 각성한 이정재가 이병헌을 위시한 게임 관계자들에게 게임 체계 자체를 파괴할 것을 천명한 것처럼, 근본적인 틀(분단체제와 식민지하의 예속자본주의체제)을 깨부수고 체제 및 사회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인가?

여러모로 후자의 실현을 위해서 진보/민중 진영의 역할과 임무가 막중하다 하겠다. 그리고 그 답은 진보/민중 진영의 자기혁신과 실천을 통한 대중사회에 대한 조직과 정치사상적 각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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