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D.P의 대사에도 나오더만. 1953년 수통을 병사들이 아직도 쓰는 이 세상에서 세상을 바꾸려면 “뭔가를 해야한다”. 그 병사는 총을 난사했지만 물론 그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이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군대는 한 사회의 정치도덕 수준과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지극히 정치적인 조직이므로.

저자: 이범주(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군대는 한 나라의 정치도덕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군대 드라마 D.P를 보았다. 헌병 중 탈영병들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D.P라고 하는 모양이다. 탈영하게 된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병사들 사이의 폭력, 성추행, 간부들 간의 갈등, 장교들이 위만 바라보고 하급자는 제 출세를 위한 수단적 존재로만 보는 행태가 고통스럽게 펼쳐진다. 아직도 이렇단 말인가. 내가 군생활 했던 1980년대 중후반의 기억이 아프게 되살아 온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에서도 병사들은 탈영하고 총으로 자신을 자해했다. 이는 주로 병사들 사이에서의 폭력에 기인했다. 나보다 10개월 고참이었던 박경*를 완도에서 온 고참 김형*, 신용*, 신훈* 등이 극단적으로 학대했다. 밤마다 막사 뒤로 박을 불러내 구타했고 훈련 나가서 그의 입에 모래를 넣고 주먹으로 양 볼을 때렸다. 훈련 중 박은 탈영했다. 멀리 가지 못하고 대대 통제구역 안에서 잡힌 탓에 그의 탈영건은 크게 문제되지 않고 무마된 것으로 안다. 그러고 나서는 고참들이 더 이상 그를 과도하게 학대하지 않았다. 

왜 그들은 그리 잔혹했을까. 증권회사 들어가서 노조위원장 하다가 그만두고 택시 운전사로 직업을 바꿨던 박은 지금도 착한 마누라와 잘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완도의 그 고참들도 그런대로 괜찮은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잠복된 폭력성을 발현케 하는 탓일까...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군대가서 또라이 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부대는 종종 야외훈련을 했다. 고지를 향해 이동하다가 중간에 참외밭을 보면 병사들은 갑자기 포복으로 자세를 바꾸며 참외를 아작냈다. 밤에 매복경계근무 나가면 인근의 포도밭을 결딴냈다. 지루하고 고통스럽게 흐르는 시간과 과도하고 무의미한 폭력에 지친 병사들에게 있어서 약간의 도적질과 도덕적 타락은 차라리 장난이었다. 
 
난 그런 행태를 보며 입대 전에 읽었던 ‘에드가 스노우’의 저서 <중국의 붉은 별>을 생각했다. 홍군은 쫓기면서 아무리 굶주리고 처지가 곤란해도 인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인민들 사는 마을에 들어 잠을 자게 되면 헛간에서 잤고, 자고 나면 청소를 깨끗하게 해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며, 망가진 문을 고쳐주는 등 인민들 불편 해결해 주는 것을 철의 원칙으로 삼았다. 지나가는 곳마다 홍군은 그들의 이념과 정책을 담은 연극, 노래, 춤...등의 문화행사를 열고 인민들과 한 데 섞여 어울리며 같이 놀았다. 계급이 없어 홍군 사이에 폭력이 없었다. 이렇게 쌓은 정치-도덕적 우위가 인민들의 마음을 사고 그들의 원조를 얻어 마침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내전을 이겨낸 것이 중국혁명이다. 

이런 것을 보면 군대만큼 한 나라의 정치-도덕의 수준과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집단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군대는 한 나라 지배집단의 성격과 수준을 액면 그대로 드러낸다. 

내가 제대한 날이 1988년 1월 5일이니 30년을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군대는 여전히 병사들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곳이구나....드라마를 보며 새삼스레 몸서리를 친다. 바뀌지 않았다,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라의 경제규모는 커졌고 민주화도 되었다 하나 실은 본질적으로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여전히 해고와 박봉, 정치적 무권리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분단은 의연하며 이 나라 한 줌 지배집단이 미국에게 비굴하게 굴종하는 것도 변한 바 없다. 그러니 군대가 바뀌겠는가. 

일하는 인민들을 세상의 주인으로 보지 않고 지들 돈 벌어주고 권력 유지하는데 필요한 활용대상, 통치대상, 작전대상...다른 말로 개돼지로 보는 소수 지배계급에 속하는 인간들이 인민들 자식인 병사들을 진정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할 리 없다. 병사들의 탈영, 자해, 병역에 대한 혐오와 환멸은 바로 이런 조건에서 나온다. 
 
드라마 D.P의 대사에도 나오더만. 1953년 수통을 병사들이 아직도 쓰는 이 세상에서 세상을 바꾸려면 “뭔가를 해야한다”. 그 병사는 총을 난사했지만 물론 그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이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군대는 한 사회의 정치도덕 수준과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지극히 정치적인 조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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